관세 피해 현실화 속 미국 협상카드는… “소고기 수입 늘리고 고정밀 지도 반출하라”

-한미 2차 기술협의서 비관세장벽 해소 요구 공식화
-통상 전문가들 “협상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목소리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30개월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 제한 철폐 등을 한국 정부에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최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판매 중인 미국산 소고기.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이 한국과의 관세 협의 과정에서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유전자변형생물체(LMO) 수입규제 완화, 고정밀 지도 반출 등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에 매겨진 상호관세(25%)를 낮추거나 면제 받으려면 비관세장벽을 해소하라는 뜻이다. 트럼프발 관세 피해가 현실화 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 같은 요청을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1일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달 21~23일 한-미 2차 기술협의에서 미국 행정부 측은 6개 분야(균형 무역∙비관세 조치∙경제 안보∙디지털 교역∙원산지∙상업적 고려)에 걸친 개선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미국 측은 과도한 비관세조치의 대표 사례로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를 지목했다. 앞서 이명박 정부는 미국 오바마 행정부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과 연계된 쇠고기 수입 협상에서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하기로 미국 측과 합의했다. 당시 광우병 파동 이후 흉흉해진 국민 여론이 고려됐다.

 

 우리나라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수입액을 보면 FTA 발효 첫해인 2012년 5억2200만 달러에서 지난해 22억4300만 달러로 330% 뛰어올랐다. 내년부터 30개월 미만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관세가 전면 철폐될 예정이어서 시장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 측은 한국이 월령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하도록 한 것은 과도기적 조치라고 규정하는 동시에 월령과 관계없이 육포, 소시지 등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는 점도 비관세장벽이라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3일 백악관 경내 로즈가든에서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표하고 있다. AP/뉴시스

 

 아울러 미국은 LMO(생식과 번식이 가능한 유전자재조합생물) 농산물 수입 규제 완화도 언급했다. 한국은 식품용·보건의료용 등의 LMO에 대해 수입 승인 절차를 밟고 있으며, 미승인 LMO의 수입 및 유통을 방지하기 위해 검역 신고를 진행하는데 이 또한 비관세장벽이라는 것이다.

 

 디지털 교역 분야에서는 미국의 글로벌 빅테크 회사 구글이 요청한 5000대1 축척 고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 문제가 거론됐다. 앞서 구글은 2011년과 2016년 두 차례 지도 반출을 한국 정부에 공식 요청했지만, 군사기지 등 보안시설 정보가 담긴 지도 데이터를 해외 서버에 둘 경우 정보 유출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불허한 바 있다. 현재 국내에서 구글 지도는 2만5000대1 축척까지만 제공되며, 실시간 길 안내나 예약 기능은 사용할 수 없다.

 

 미국 정부의 이 같은 요구는 오는 3일 대통령 선거 이후 출범할 새 정부와의 3차 기술협의 및 향후 본격화할 관세 협상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통상 전문가들은 미국 측의 비관세장벽 완화 요구를 무조건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정부가 국민경제와 국익을 기준으로 사안별 중요도를 판별해 전략적으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국발 관세 영향이 본격화하면서 5월 수출이 지난해와 비교해 1.3% 감소하며 1월 이후 4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산업통상자원부가 1일 발표한 2025년 5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은 572억7000만 달러(약 79조2502억원)를 기록했다. 사진은 이날 경기 평택항 모습. 뉴시스

 

 실제로 올해 1월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무차별 관세 정책에 한국도 상당한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액(572억7000만 달러)은 1년 전보다 1.3% 감소했다. 특히 대미 수출(100억 달러)이 8.1% 감소한 가운데 자동차는 미국 수출이 30% 이상 급감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철강·알루미늄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또 인상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지난 3월부터 25% 관세를 부과하더니 4일부터 해당 관세율을 50%로 올린다고 천명했다.

 

 이러한 실정에서 전문가들은 관세 협상의 지렛대로서 미국의 비관세장벽 완화 요구를 활용할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과 가장 먼저 무역 협상을 타결한 영국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영국은 쇠고기, 에탄올, 농산물 등의 미국산 제품 수입을 촉진하기로 하면서, 자동차 등 자국산 제품에 대한 일부 관세 인하를 이끌어냈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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